-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소아과와 약국에 즐비했던 코믹 메이플스토리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전혀 읽지 않은 무지몽매했던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감상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동진씨의 리뷰를 비롯한 여러 유튜브를 통해 사전 지식을 어느정도 습득한 상태에서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어떠한 서사는 그 서시에 대한 많은 부연 설명을 필요로 한다. 누가 무엇을 하기 위해 어떤 여정에 오르는지. 그 서사에 살이 붙고 가지가 뻗어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나무가 되었다면 더더욱 이러한 설명은 필수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전 만들어져 전해 내려오는 가장 케케묵은 그리스 신화는 하물며 얼마나 많은 사족과 부연설명을 필요로 하겠는가. 그런 관점에서 가장 뿌리깊은 서사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그 무엇도 알고있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영화는 직관적이었다. 3시간의 러닝타임이 정말 짧게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는 한번에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 어떠한 복선과 영화적 장치, 연출을 생각할 필요없이 관객으로 하여금 그저 제시하였고 관객은 그저 그 장면과 연출을 눈에 담고, 받아들이고,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내가 놀란 감독을 참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미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밝혀졌다. 영화를 감상할 때 감독이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부터 놀란 감독의 작품은 내 취향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영화 제목은 알아도 그 작품의 감독이 누구인지 몰랐을 때에도 내가 손꼽았던 영화는 그의 작품이었고, 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영화를 만드는지 조차 모른 채 단순히 SF와 우주를 테마로 한 영화의 대가 정도로 치부해 왔다. 그러나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장르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 영화를 통해 증명하게 되었다.
- 작품을 감상하면서 결과를 이미 대부분의 관객이 알고 있는 신화, 전기, 영웅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어떠한 부분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과 벅차오름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놀란 감독이 오디세이아를 읽으며 이렇게 상상했겠구나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설화는 그 서사 자체보다 이야기꾼과 노랫말 속에서, 더 현대적인 해석으로는 영화 속 연출과 묘사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평소 쳐다도 보지 않았을, 구석에서 읽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고전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함께 서사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경험은 특별한 배경지식과 이해 없이도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범인간적인 경험이다.
- 주인공인 오디세우스의 서사를 놓고 보면, 사냥을 할 때도 상대가 알아차릴 틈도 없이 급습하는 비겁한 ‘사냥’이 아닌 싸움을 원하기에 동물이 알아차릴 수 있게 활시위를 한번 퉁기는 그의 젠틀함(?)이 이야기 초반에 등장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환대받고 싶은 만큼 나그네와 방랑자에게 환대를 베풀어야 한다는 제우스의 규칙를 철저히 따르는, 말하자면 신권주의적인 세계 속에서 타협적이면서도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힘과 지략을 통해 이타카의 왕이 된 인물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자기의 주인을 대신해 전쟁에 참전한 목동이었던 시논을 ‘속여’ 트로이 목마로 적군을 유인하고, 결론적으로 아테나를 위한 선물로 둔갑한 목마에 잠입하여 제우스의 규칙을 깨고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그는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에게 굳이 쏘지 않아도 될 화살을 쏘아(원작에서는 도망가면서 자신이 오디세우스임을 밝혔다고 기억하는데 영화에서는 연출되지 않은듯)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고, 영화 속 소용돌이를 지난 이후 6명이 희생되어야만 나머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독단적으로 선택한다.결정적으로, 후반부 거지꼴을 하고 페넬로페에게 “What if” 로 시작하는 주저리주저리를 시작하면서, 제우스의 율법이 지배하던 청동의 시대는 무너졌다고 선언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오디세우스는 신조차 거스르며 자신의 귀향길을 스스로의 운명을 믿고 개척해낸 영웅처럼 보이지만 길고긴 여정 끝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마지막 방법은 스스로를 자기 몸 크기만한 나무 판자 조각 위에 올려놓고 그저 운명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이었다. 사실 그의 서사가 아니더라도 이미 세계는 예전같지 않았고 제우스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에 의해 예견된 멸망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내부적으로도 구혼자들은 모든 이방인에게 환대를 베풀어야 한다는 법을 악용하여 왕비와 성의 자원을 축내고 권력을 탈환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귀환 이후 당당하게 청동의 시대는 지났다며 자신이 살아오고 자라왔던 시대라는 알을 깨어 부수는 다면적인 캐릭터를 연출하면서도, 묻히지 못한 자신의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서쪽으로 페넬로페와 함께 항해를 떠나는 이중적인 장면은 마치 오디세이가 여전히 두껍고 빛 바랜 고전 속 이야기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하다.
- 분야는 다르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았을 때 그 넘실거리는 바다가 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좇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주는 일종의 애환을 지는 해를 쫓아 서쪽으로, 가장 빠른 배, 충직한 신하와 함께 가겠다는 수미상관으로 잘 표현한 것 같다. 뭔가 모든 씬 중에 가장 낭만적이고 뇌리에 깊게 남았던 장면이었다. 바다위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본 사람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 OST와 사운드는, 굳이 따지면 불호였다. 운이 나쁘게도 벽쪽에 위치한 스피커 바로 옆 자리였기에 영화관 특유의 우퍼에서 나는 불쾌한 진동을 내내 느껴야만 했다. 다행히도 그 진동이 실제로 불편했던 장면은 처음과 마지막 트래비스 스콧이 ‘A man’ 하면서 땅바닥 칠 때 말고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OST의 경우에는 이 또한 캐리비안의 해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바다내음나는 경쾌한 현악기의 사운드를 기대했는데 조금 아쉬웠다. 오케스트라를 안썼다고 들었는데 폭풍우 속에서 노를 젓는 장면이나 혼자 뗏목을 타고 바다를 표류하는 장면에서는 구슬픈 바이올린 소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혼자 생각해봤다. 뭔가 바다와는 현악기가 어울리는 것 같다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 관람 전 봤던 이동진씨의 파이아키아에서 놀란이 스릴러 해도 참 잘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았는데 외눈박이 거인을 상대하는 장면을 돌이켜보면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 진부한 말을 추가하자면,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만큼 몰입감이 넘쳤다. 각 서사 하나하나가 굉장히 스피디하게 전환되고 연출된다는 사실을 관람중에도 인지했으나 설명보다 그저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이 이해되는 이야기들인지라 설명이 부족하거나 개연성 이슈로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오펜하이머의 일생과 배경지식이 필요로 하고, 여러 회상 연출을 통해 집중력을 유지시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던 오펜하이머와는 대조적이다. 갈래상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 9번까지 추가하고 싶어서 굳이 한 문단을 더해봤다. 생각이 오염되기 전에 끄적여 다소 맥락이 없고 장황하지만, 이 또한 AI가 흉내낼 수 없는(아직까지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겠는가. 놀란이라는 이름을 가리고 봐도 충분히 잘만든 작품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놀란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더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았을까? 굳이 이동진에 빙의해서 평가를 하자면 나도 4.0/5.0을 주고 싶다. 학점으로는 A0. 홍대병 분들에게는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바로 직전에 보았던 호프보다는 이 영화가 훨씬 직관적이고 보기에 좋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이 꼭 고등한 작품이고 직관적인 작품이 꼭 레벨이 낮은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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