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사랑에 관한 단편. 하루키를 처음 접한다면 이 책을 읽지 않기를 강력하게 권고한다. 하루키가 왜곡된 성욕의 소유자이며 올바르지 못한 비윤리적이고 몰상식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오판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초기에 이 책을 읽게 되어 나도 그런 편견을 가질 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작품을 작품으로 읽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루키가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 화자를 중심으로 전개되기에 독자의 성별에 따라 때로는 공감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정말 많은 걸로 봐서는 이 것을 의도하고 쓴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루키는 제목을 짓거나 어떤 중요한 모티프를 부여할 때 선대의 유명한 작가들을 리스펙하는 마음에서 오마쥬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1Q84, 해변의 카프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등.. 이 책 또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집인 ‘여자 없는 남자들’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여 그에게 큰 영향을 받았음을 적나라하게 알린다.
추천 작품
- 예스터데이
드라이브 마이 카
아내를 잃은 슬픔을 토로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위해 운전하는 과묵한 여성 운전수인 ‘미사키’.
잘 알겠지만 비틀즈의 ‘Drive my car’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했다.
자신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상대를 알면서도 그에 대한 복수심이나 분노가 아닌 담담함으로 그 남자와 가까워지는 주인공. 사랑의 대상이 없어졌기에 감정 발산의 이유가 없어져 자연스레 사그라들었다고 해석하기보다는, 결국 무엇이 자신이 모른 새 진행된 일련의 사건을 일어나게 만들었는지 자기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며 회고한다.
예스터데이
대학 시절 친했던 두 남학생과 그 중 한명의 연인이었던 구리야 에리카라는 세명의 주인공이 주가 되어 스토리를 이끌어 간다. 그의 초기 작품의 아이디어와 모티프들이 발견되었던 것 같다. 되돌아보면. 그가 구리야와 재회하면서 언급한 ‘얼음 달’은, 일종의 은유와 상징이라기보다는 작품의 주제의식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어떠한 장치, 내면세계의 형상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다시 생각해보면 그의 초기 작품 (쥐 시리즈)의 향이 짙게 나서 즐거웠다.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
독립기관
어떻게 보면 모든 작품중 가장 공감이 갔던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인지하는 사랑의 형태의 형태소를 분절하여 파악하는 일에 우리는 능하지 않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면 스킨쉽과 육체적 관계가 수반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사랑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린 것에는 수없이 많고 다른 요소들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종류와 구분에 관한 글을 찾아보다가, 어쩌면 하루키는 ‘필리아’적 사랑에 대한 집착이나 환상 따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국어사전이나 단어의 사전을 찾아보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phila : (명사에서) (특히 섹스와 관련하여 비정상적으로) …에 대해 갖는 이상 성욕(성애)
philia : brotherly love, closer than that based on principles, denotes affection, close friend or family
그 어원에서 출발하는 phila는 특히 사춘기 시절의 열정과 불안, 순수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친구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묻어나는 이야기들을 더듬어 가며 지나간 기억을 떠올린다.
하루키의 많은 소설 속 주인공들, 혹은 주인공의 히로인의 나이대를 떠올려 보면 모두 15~20세 사이의 고뇌하는 청소년이다. 전에도 친구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일본의 ‘학창시절’에 대한 향수는 우리나라의 정서에 비해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학구열에 찌들어 입시경쟁에 어린 나이부터 휘말린 한국인의 학창시절에 추억이 깃들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푸르른 봄 이라는 청춘이라는 단어의 뜻 처럼 외부에서 관찰하면 과도하게 느껴질 정도의 청춘기의, 그 시절의 사랑에 대한 집착이 하루키의 소설의 동력원이자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인 ‘도카이’는 일과 사생활이 엄격히 구분되어있다. 객관적으로 혹자는 ‘난잡한 사생활’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나름대로의 도그마를 가지고 깔끔하게 본인의 욕구를 해소하는 일종의 비지니스적인 사생활을 즐기고 있었던 그였다.
따로 만나는 여성들의 스케쥴을 비서를 통해 관리할 정도로 정력적인 생활을 영위하던 그는 나치 수용소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인가’라는 고민 속에 빠지게 되고, 한 여성을 진지하게(앞선 사랑은 진지한 사랑이 아니었던건가?) 사랑하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시름시름 앓으며 식음을 전폐하고 결국 죽음에 치닿게 된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무수히 많이 논의되어 닳아 빠진 문제를 바라볼 때에는 우화적인 접근이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피상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진짜 사랑을 만난 주인공이 그동안의 행위중심적이고 육체적인, 가짜 사랑의 몰가치성을 체감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어떠한 행위도 배제된 인간에 대한 순수한 욕망을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본질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사랑은 단순한 다의어가 아닌 용례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가질 수도 있는 복합어휘이다. 이를 두개의 기능적 요소로 분절하여 보았을 때 그 어느 것도 배제할 수 없음이 역설된다.
마지막으로 독립기관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여자라는 생물이 오로지 ‘거짓말’을 하기 위해 독립된 장기 혹은 기관이 존재한다는 발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셰에라자드
이 단편은 좀 변태적이다.
기노
자아의 흐려짐을 공포스럽게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몸둘 곳 없이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그를 통해 영혼의 정처없고 갈곳 잃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미타는 말했다. “기노 씨는 제 스스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잘 알아요. 하지만 옳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 만으로도 부족한 경우도 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그런 공백을 샛길처럼 이용하는 자도 있어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기노는 이해되지 않았다. 잘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가미타 씨 말로는 내가 뭔가 옳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건가요? 이 가게에, 혹은 나 자신에.”
사랑하는 잠자
카프카 변신이 떠올랐다면 잘 읽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보기에 따라 조금 역겨울 수도
여자 없는 남자들
타이틀이 될 정도의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중략)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 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속 깊숙이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 시간과 함께 색은 다소 바랠지 모르지만 얼룩은 아마 당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어디까지나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하나를 잃는 것은 곧 전부를 잃는 것이고, 무엇인가 잃는 다는 것은 ‘잃음’의 비가역적 흔적을 남기고 스쳐간다.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