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의 노션에 있는 생각 상자를 들여다본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느낄 수 있었던 하루키의 미친 생각들과 가끔 창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신선한 아이디어의 소스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보는 것 과 같이. (물론 그것은 과학적,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나름의 체계를 가진 문서이지만, 내 노션에 있는 생각 상자와 밤의 거미원숭이와는 맥락이 없고 정말 찰나에 스치는 생각을 기록해두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물론 하루키의 그것이 훨씬 문학적으로는 즐겁게 읽히겠지만)

신선하고 엉뚱하고 괴이한 느낌의 단편들을 다 제치고, 진짜 하루키의 문학이라 느꼈던 단편을 한번 고대로 가져와 봤다.

한밤중의 기적에 대하여, 혹은 이야기의 효용에 대하여

소녀가 소년에게 묻는다.

“너 나를 얼마나 좋아해?”

소년은 한참 생각하고 나서, 조용한 목소리로 “한밤중의 기적 소리만큼”이라고 대답한다.

소녀는 잠자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뭔가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밤중에 문득 잠이 깨지.”

그는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어. 아마 두 시나 세 시. 그쯤일거야. 하지만 몇 시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어쨌든 한밤중이고, 나는 완전히 외톨이고, 내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ㅇ한번 상상을 해봐. 주위는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 시계가 멈춰 버렸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는 갑자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장소로부터, 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고, 격리괴어 있다고 느껴. 이 넓은 세상에서 아무한테도 사랑받지 못하고, 아무도 말을 걸어 주지 않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돼. 설령 내가 이대로 사라진대도 아무도 모를거야. 그건 마치 두꺼운 철 상자에 갇힌 채,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 같은 느낌이야. 기압 때문에 심장이 아파서, 그대로 쩍하고 두 조각으로 갈라져 버릴 것 같은 - 그런 느낌이야. 이해할 수 있어?”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소년은 말을 계속한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가장 괴로운 일 중 하나일거야. 정말이지 그대로 죽어 버리고 싶을 만큼 슬프고 괴로운 그런 느낌이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죽고 싶은 것이 아니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상자 안의 공기가 희박해져서 정말로 죽어버릴 거야. 이건 비유가 아니야. 사실이라고, 이것이 한밤중에 홀로 잠이 깬다는 것의 의미라고. 이것도 알 수 있겠어?”

소녀는 잠자코 고개를 다시 끄덕인다.

소년은 잠시 사이를 둔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에서 기적 소리가 들려. 아주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야. 도대체 어디에 철로가 있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만큼 멀리서 들려오거든. 들릴듯 말 듯한 소리야. 그렇지만 그것이 기차 기적 소리라는 것을 나는 알아. 틀림없어.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리고 다시 한번, 그 기적 소리를 듣지. 그리고 나면 내 심장의 통증은 멈추고 시곗바늘도 움직이기 시작해. 철 상자는 해면 위로 천천히 떠올라. 모두가 그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야. 들릴 듯 말 듯한 그 정도로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라고. 나는 그 기적 소리만큼 너를 사랑해.”

거기서 소년의 짧은 이야기는 끝난다.

이번에는 소녀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