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소설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은 후 감상했습니다.

원작에 비교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점과 단점이 각각 존재했습니다.

먼저 단점부터 이야기하자면 SF소설 바탕의 SF 영화라는 것이 무색하게 일종의 설정, 그러니까 언어에 대한 이해와 그들에 대한 묘사, 물리적 매커니즘에 대한 설명이 통채로 생략되거나 축소되어 있습니다. 먼저 음성 언어와 기록언어 (원작에서는 헵타포드 A와 헵타포드 B)가 어떠한 형태적, 의미적 차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Sequential한,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음성언어를 통하여서 소통하는 것이 거북한 이유와 그와 동시에 한 눈에 바라보아지는 (시제가 없는) 기록언어가 그들의 인식과 이해에 방식에 부합하다는 그럴듯한 설명이 생략되었습니다. 원작에서도 헵타포드 B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모티프 삼은 면이 없지 않지만, 그 기록언어의 안티테제로써 헵타포드 A 또한 의미를 가지며 언어의 주술성(정확히 용어가 기억나지 않지만 단순히 지시하고 명령하고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발화됨으로 완결되거나 시작되는 일련의 행위들)에 대한 상당히 흥미로운 묘사와 헵타포드 B 만으로 그들이 의사소통할 수 없다는 작은 문제에 대한 설명 또는 해설 부분이 생략되었습니다.

또한 작품의 개연성과 흥미진진함을 더하기 위해 덧붙여진 폭탄과 긴박한 상황들이 그 의미를 해석하기위해 곰곰이 생각에 잠겨야 하는 원작의 특성을 살리지 못합니다.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반사경을 통해 거울로만 소통하던 원작과 달리 실제 제목과 같이 ‘Contact’하며, 그들의 사고 구조와 행동특성이 아닌 그들의 미스터리한 외형과 일련의 사건들에 촉각을 세우도록 종용합니다.

반면 장점은,

어쩔 수 없이 영화도 시퀸셜하며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런 독자의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동시적이고 변분법적인 헵타포드의 사고의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책은 과거와 미래 시점을 교차하여 저술합니다. 책이기 때문에 이런 전개가 장황하고 뒤죽박죽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읽는 데 어려움을 더하였으나 영화이기에 가능한 화면 전환, 오버랩 등의 묘사는 곱씹어 생각할 필요 없이 직관적으로 이해시키기에 적합했습니다.

스포일러지만 이미 충분히 했기에 결말에 관한 내용에서 찾을 수 있었던 다른 장점입니다. 주인공의 딸이 세상을 떠난 이유가 암(혹은 종양)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이 것이 원작 소설의 투신자살보다는 훨씬 마일드하고 낫지 않나 싶습니다. 일반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투신 자살은 찰나적이고 우발적인 충동에 따라 자행된다고 보이기도 하는데 반해 종양이나 암의 경우는 그 인자를 잠재적으로 오랜 시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쉽습니다. 즉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떠난 것에 대한 조금 더 개연성있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개연성이라는 것 또한 인과법칙과 오일러리안적 사고일지도 모르겠지만.) 남주가 미래를 볼 수 있는 여자 주인공으로부터 자신의 딸이 투신한다는 미래를 전해듣게 된다면 비관하고 떠나기보단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쪽이 타당합니다. 그러나 종양은 이미 선천적으로 발병해있고 막거나 변화시킬 수 없는 미래라는 것이 조금 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므로 남편이 떠난 이유에 대해 조금 더 그럴듯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철저한 인과관계에 의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물리학자였던 남자주인공이 동시성과 변분법적 사고를 익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균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여주인공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퀘세라세라의 마음으로 남편을 받아들인 아내를 블레임하게 되는 저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절차적 세상과 동시적 세상 속에서는 선과 악, 도덕과 규율 또한 재정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루종일 이런 생각들(원작과의 비교) 하느라고 영화적 구성요소, 연출과 연기, 음향 등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면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게 제 영화력이라면, 네.. 받아들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