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추천
- 양면의 조개껍데기
- 소금물 주파수
- 비구름을 따라서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인간의 본질적 요소를 정의할 때 외형적인 부분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는다. 수브다니가 안드로이드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면 그가 당연히 사람이라고 이입하고 읽어나가지 않았을까. 사실 무엇을 인간으로 정의하느냐의 문제는 I-robot부터 시작해서 이미 닳아 빠지도록 다루어 왔던 문제라 크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캡챠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수많은 현재의 AI 모델들을 고려하면, 소설 속 수브다니가 현재까지의 인간적인 비인간 객체들과 단 하나 다른 점은 스스로 무언가를 원한다는 점이다. 기계는 가치중립적이다. 어떤 것을 원하고 갈망하지 않지만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그렇지 않은 순간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매 순간 무언가를 욕망한다.
양면의 조개껍데기
단편집의 제목이자 (거의) 가장 인상깊었다고 할 수 있는 단편. 레몬과 셀리라는 두개의 인격을 가진 인종이 존재하는 세계. 어떤 파격적인 설정을 부여하여 사람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미끼를 던지지만, 실제로는 우리 세상을 조금 과장해서 설명하는 것 뿐이다. 우리는 하나의 자아와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단언하지만 특수한 정신질환자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여러 면모의 인격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마치 여러 방향으로 결을 따라 깎인 크리스탈 볼을 보는 것 같다. 한 면에 반사되는 빛은 한쪽을 가리키지만 조금만 그 정렬이 어긋나면 원래의 방향과는 완전히 상이한 방향의, 다른 색을 발산한다. 또 우리 인격에는 일종의 투명성이 있어서 달과 같이 달의 뒷편을 관찰할 수 없는 것과 다르게 인격을 투과하여 그 너머에 있는 대척점에 해당하는 성격 혹은 면모 또한 그림자를 통해 추론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이 컨셉을 활용한 더 유명한 작품이 바로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일 것이다.
진동새와 손편지
촉각을 언어 삼아 진동으로 교류하는 진동새와, 이미 의미를 충분히 담고 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던 우주인의 흔적.
“더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지금 당신을 만나러 와야 했어요.”
이상하지? 앞으로도 난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거야. 고작 그 말을 다시 쓰기 위해, 그렇게 많은 새들이 필요하다니.
소금물 주파수
돌고래 망이와 돌고래 학자였던 돌아가신 할머니의 뒤를 추적하는 손녀딸의 모험.
이 소설이 목적하는 바는 분명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흥미롭다.
고요와 소란
사물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함.
달고 미지근한 슬픔
양자적 큐비트 속에서 살아가며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 단하와 규은.
몰두는 허무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규칙이다.
통속의 뇌라는 다소 진부한 컨셉트로부터 인류의 근원을, 살아감의 목적성을 획득해내기 위한 치열한 여정. 우리를 이루는 물질은, 그 세상은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무한대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론적 빅 뱅.
비구름을 따라서
삼투막, 아방가르드한 세계관이 눈길을 끌었다. 어쩌면 평행 세계에 대한 작가만의 독특한 이해일지도 모르곘다. 반투막이 용질이 아닌 작은 입자의 용매만을 통과시키지만, 우연적으로, 무작위적이고 정말 의식하지 못할 작은 정도로 반투막을 통과하는 용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의식이 닿지 않은,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작은 물체들은 유유히 반투막을 통과하여 원래 있으면 안되는 세계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판타지적 요소가 충분하지만, 그 ‘작은 물질’에 해당하는 기준이 인간의 관심과 이목의 집중인 것은 너무 인간중심적인 발상이 아닐까? 뭐 인문학적인 insight를 주기 위한 안온한 단편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치밀한 설정과 과학적 증거로 뒷받침된 설정 속에서 피어오르는 기발한 발상과 아이디어로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통찰을 주는 SF의 취지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SF라고 해놓고 두 인물 사이의 감정선과 사건에 대한 묘사에 치중하는 것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