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3부작’ 혹은 하루키의 초기 단편 4부작으로 불리는 시리즈 중 가장 길이가 짧고, 어찌 보면 가장 언급이 적은 것이 바로 “1973년의 핀볼”이다.
작중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나온 동일한 ‘나’와 여전히 삶의 이유와 목적을 찾지 못하는 ‘쥐’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더 정확히는 ‘나’의 과거와 현재, ‘쥐’의 현재로 세가지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주를 이룬다.
대학 시절 만났던 ‘나오미’와의 추억, 그는 대학시절 모든 사람들의 출신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녔다. 금성과 화성이 고향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오미’와 오래도록 나누며 함께 마셨던 커피의 따뜻한 온기와 추억을 그는 오랜시간이 지나도록 잊지 못한다. 그녀의 흔적을 찾기 위한 명시적 시도로써 그녀가 언급한 시골 기차역을 방문한다.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말한 개 한마리를 보기 위해 하염없이 그 시골 역의 승강장에 앉아 개를 기다린다.
그는 집에서는 서로 구분할 수 없는 쌍둥이와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한 집에서 살아간다. 번역일을 하는 작은 직장의 여직원은 그에게 호감을 품지만 어떠한 이도 이미 세상에 없는 ‘나오코’와의 기억의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한다. 누가 봐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요소들을 지극히 일상적으로 서을함으로써 작품에 일종의 긴장감을 준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지 예측불가능함에서 나오는 긴장감이라기보다는 어떠한 분위기, 배경적 요소로서 주는 긴장감이다.
그는 집에 배전반을 수리하러 온 수리공이 놓고간 낡은 배전반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새끼를 두고 있는 엄마였던 배전반은 죽어 없어지기에 새로운 배전반으로 교체된다. 두 쌍둥이와 죽어버린 배전반의 장례식을 치루기 위해 그는 비오는 날 저수지로 향한다. 자신의 죽어버린 일부분을 바라보며, 그는 한 때 미친듯이 열광했던 핀볼 기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품게 된다.
그가 대학생 때 마음을 쏟았던, 중국인 바텐더 J와 ‘쥐’와 함께했던 바의 핀볼기계는 그들의 행복한 시절의 추억이자 상실된 사랑인 나오미에 대한 메타포이다. 그의 핀볼에 대한 열정과 끈기는 나오미를 향한 사랑에 대한 왜곡된, 혹은 대체된 표현이었고 죽음으로 인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 나오미와 달리 그는 닭고기 냄새가 가득한 냉동 창고에 팔열 종대를 이룬 전시대 사이에서 다시 그토록 그리던 핀볼 기계를 대면한다.
그는 그토록 찾았던 핀볼 기계와의 대면을 이루었지만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121,150이라는 그의 기록은 자신의 최고 기록임과 동시에 핀볼 기계에게도 최고 기록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어,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엇 하나 끝나지 않았어. 아마 언제까지나 똑같을 거야. 하고 내가 말했다. 리턴 레인, 트랩, 킥 아웃 홀, 리바운드, 행잉, 6번 타깃…… 보너스 라이트.
121,150, 끝났어요, 모든 것이, 라고 그녀가 말했다.
인간이 가진 기억 속 생생함은 끝나지 않고 반복 재생되는 음악처럼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킬 것만 같다. 마음 속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던 나오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부드럽고 따스한 연인의 모습이 아닌 차갑고 얼어붙은 침묵의 현장이었다. 심지어 그가 그토록 찾고 해메었던 핀볼 기계는 도산해 버린 영세 핀볼 기업의, 아무 특색도 없고 장점이랄 게 없는 마지막 작품일 뿐이었다.
소설에서 작가는 삶은 불완전함의 연속임을 강조한다. 핀볼 기계는 그 자체로 주인공이 열정과 시간을 쏟아부었던, 그토록 열심히 찾고있던 사랑의 대상임과 동시에 사랑과 삶의 찰나적 측면을 통해 스스로를 반추하도록 만드는 장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어야 하고,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어야 한다. 시작이 있지만 끝이 없는 쥐덫에 걸려 자신의 고장을 벗어나지 못했던 ‘쥐’는 주인공이 핀볼기계를 찾음과 거의 동시에 바텐더 J에게 작별을 고하고 고향을 떠난다. 어디로 떠날지는 상관이 없다. 그렇지만 쥐 덫의 출구를 찾아 더이상은 섹스와 죽음을 거부한 소설이 아닌 본인의 소설을 쓸 소설가로 변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작품해설에서 언급하였듯이, 하루키의 훗날의 소설인 ‘해변의 카프카’에서 사용된 여러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15살의 생일에 집을 떠나 어디로든 떠난 주인공 ‘카프카’와 무력감과 상실의 고향에 작별인사를 건네고 쥐덫에서 빠져나온 ‘쥐’. 어떻게 들어도 완벽하지 않은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역설하는 도서관 사서인 오시마 씨. 멀쩡히 살아 있는 50세의 사에키 씨가 있음에도 유령과 같이 마음 속을 헤메이는 15살의 소녀 사에키를 사랑하는 주인공 ‘카프카’와 이미 생을 마감한 ‘나오미’와의 기억을 생생히 담고 살아가는 주인공.
주인공과 ‘쥐’의 삶에서 그들은 입구는 있지만 출구가 없는 쥐덫에 걸린 사람들처럼 멈추어진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시간 흐름에 대해 무관심한 묘사는 주인공에 대해서는 특이한 삶에 대한 평범한 묘사로, ‘쥐’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시간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는 서술로 표현된다. 그러나 둘은 coincidentally 하게 핀볼 기계와 재회하고, 고향을 떠남으로 출구를 찾는다. 땅 속으로 파인 우물처럼 나올 수 없는 허무 속에서 다시 출구를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