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라는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작품이자 군조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의 초기작은 아직 전업으로 소설 쓰기에 전념하지 않고 카페 일을 병행하며 소설을 취미로 쓰던 시절의 책이다. 하루키는 이후 회고를 통해 ‘이정도의 작품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 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고 본인 스스로도 다듬어지고 완성되지 않은 초고 정도의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는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소설을 완성하고 이 중단편 소설을 통해 전업작가로써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20대 초반인 나와 ‘쥐’라고 불리는 친구의 여름방학동안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바텐더 J가 일하는 바에서 시간을 죽이며 방학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술집 화장실에서 취해 있던 한쪽 새끼손가락이 없는 여자와 가까워진다. 학창시절 자신에게 레코드를 빌려주었던 이름 모를 여학생의 사연을 라디오 시청자 참여 코너를 통해 말하고 그녀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지만 끝끝내 알아내지 못한 것은 고향에서의 방학동안 잠깐 만났던 여자와의 인연에 대한 복선이다. 둘은 가까워지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여자가 그의 품안에서 우는 이유를 끝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한편 ‘쥐’라고 불리는 친구는 주인공보다 한살 많은 남자 대학생이다. 더 정확히는 학생운동 등에 휘말려 학교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의 소설에는 섹스와 죽음이 나타나지 않는다. ‘쥐’는 집이 부유하지만 전쟁 때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기에 본인 스스로 부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가지고 있다.
‘쥐’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 주인공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 하자 쓸쓸함을 느낀다. 가을이 되어 날씨가 쌀쌀해지고 풀벌레가 스러져 갈 때 느끼는 허무함을 하루키는 담아낸다. 그 공허와 무력감 속에서 우리는 마지막임에도 마지막임을 알지 못하는 만남과 같이 스쳐가는 바람의 무심한 쓸쓸함을 느낄 수 있다. 발이 붕 떠서 공중에 있는 것 처럼 감각하는 이상세계와 현실의 괴리를 느끼다 언제 착지할지 알 수 없는 불안과 영문모를 고독 내지는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쥐’는 또다른 나의 표상이자 양가적인 자아에 대한 거울상이다. 작 초반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 ‘나’와 예쁜 여자가 튜브를 타고 표류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둘은 배에서 흘러나온 짐짝에 있는 음식과 맥주를 마시며 표류하다, 어떻게 탈출할지를 궁리한다. 여자는 팔이 떨어져라 열심히 헤엄을 쳐 마침내 뭍에 다다르고 구조되었지만 남자는 그저 해류의 방향을 따라 이리저리 표류하며 동일하게 구조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게 만들어졌다는군!
- 여자 : 누가 한 말이야?
- 남자 : 존F 케네디!
하루키는 서두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와 작품의 배경에 대해 ‘데릭 하트필드’라는 작가에게 감명을 받았다는 자서전적인 소개로 책을 시작한다. 찾아보니 데릭 하트필드는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다.
‘글을 쓰는 작업은 단적으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감성이 아니라 ‘잣대’다.’ (하트필드의 ‘기분이 좋으면 왜 안 되는데’ 에서)
데릭 하트필드의 입을 빌린 하루키의 글에 대한 사고관은, 그가 소설을 전업으로 쓰기 시작하기 이전이었기에 할 수 있는 무심한 발언이 아니라 그가 소설을 쓰고 작가 생활을 지속하는 행위 자체가 자아를 둘러싼 세상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종의 identity를 확인하는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 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싶어졌다며 글을 쓰게 된 동기이자 포부를 밝혔다. 29세의 나이로 안정적이라면 안정적인 생활을 했던 그는, 야구장의 넓은 잔디밭의 둔덕에 누워 한신 타이거스의 전신인 ?? 야쿠르트 팀의 경기를 보며 문득 글을 쓰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진술한다. 자기요양의 수단으로써의 글쓰기가 아니라 자기요양의 사소한 시도에 불과한 일이라고 스스로의 글쓰기 활동을 폄하하는 듯 보이면서도 정직하게 글을 쓰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을 통해 그는 심플한 언어를 쌓아 심플한 문장을 만들고, 심플하지 않은 현실을 그렸다고 말한다. 현학적이고 유려한 문체가 아니라 초등학생이 쓸 법한 짧고 명료한 문장과 간결한 진행을 통해 심플하지 않은 당대의 대학생 또래 나이의 사람들의,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한번 쯤은 겪었을 법한 시기의 허무와 상실, 그리고 덧없음을 담았다.
그의 초기 소설은 니체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처럼 보인다.
한 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