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어딘가에 후기를 써 두었는데, 날아간 것 같다.

1Q84를 읽고 있어서 그런가, “공기 번데기”를 쓴 후카에리와 작가간에 모종의 유사성을 느꼈다. 글을 쓰는 방식이나 문체 등의 요소가 아니라 유명해진 계기와 마케팅에 관련해서.

청소년의 자살과 정신질환에 있어 지켜져야 할 선이 있다면, 그것을 절대 미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청소년의 자기중심적이고 자아가 비대해진 상태에서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실존적인 고민들은 철학적 통찰이나 종교적 성찰의 영역이 아니라 스스로의 죽음이나 상처받음을 미화하고 그것으로부터 위안을 얻는 경우가 왕왕 존재한다. 정신이 멀쩡한 성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으나 분명 그러한 요소가 존재한다. 그들에게 지식적인 교육과 철학적 성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물론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만 그들의 나이에서 인생의 실존, 삶의 목적에 대해 깊이 성찰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정신의 발달 과정 가운데 조금 경로를 잘못 탄 것이다.

작가의 표현력에 대해 토를 달고 싶지는 않기도 하고 어린 작가니까 완숙하고 적확한 표현으로 심리 상태를 묘사하지 못했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싶지도 않지만 작가가 묘사한 청소년들의 심리상태와 생각은 과소평가된 측면이 존재한다. 현실은 책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는다. 나의 개인적 체험으로도 그랬고, 주변 사람들을 둘러봐도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서 청소년들의 자살에 관련된 문제에 누군가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그걸로만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봤을 때는 유치한 애들 장난이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모두가 거쳐가는 마음의 과정이라 쉽게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그들에겐 자신의 인생과 남은 삶이, 그리고 청춘이 걸린 문제이며 쉽게 생각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 스스로만이 해결할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심리의 문제를 정신병리학적으로 일괄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만은 적절한 메디케이션과 최소한의 수준의 상담이 어른이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수이고, 그 이후의 문제는 스스로가, 혹은 비슷한 문제를 겪는 또래가 자기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나서서 도와주어야 할 것은 그들을 깊이 공감해주고 상담해주는 영역보다는 제도적,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도록, 혹은 의료적으로나 그들이 탈선하여 사회적 문제나 물의를 (스스로 책임지기 어려운) 일으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어른들보다는 청소년 독자를 위한 책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