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스며든 미래가 먼저 도래한, 바둑이라는 분야를 가지고 AI 이후의 미래에 대한 일반론을 확장하는 책이다. 여러 바둑기사와의 인터뷰와 면담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AI를 받아들였거나 거부했고, 바둑계에 불어온 파문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 다른 분야에 AI가 접목될 때 불러올 법한 파장을 설명한다.
바둑에 AI가 도입되면서 많이 사라졌지만, 바둑은 마치 무협지의 그것처럼, 상당히 모호하고 신비스러운 요소와 용어로 묘사되는 경우가 잦다. 기풍이라던가, 기세라던가. 바둑은 알파고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신선놀음’이자, 일종의 유파에 들어가 도제식으로 갈고닦아야하는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 스포츠임과 동시에 양자간의 수싸움과 기세싸움을 통해 하나의 바둑판 위에 2명이 자웅을 겨루며 만들어가는 일종의 예술적 측면이 다분한 것으로 여겨졌다.
알파고 사태가 작금의 AI 시대의 신호탄을 울린 것은 사실이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마인드스포츠’라 불리는 이 분야에서 알파고의 까마득한 선배이자 초석을 올린 체스의 ‘딥 블루’가 존재한다. 왕을 메이트로 몰아야 한다는 간단한 규칙과, 8x8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보드의 크기에 비해 전체 이미지가 그려지기 전까지는 승패를 알 수 없으며 계가라는 특이한 스코어링 방식을 통해 계산되는 점, 19x19라는 큰 바둑판에 착수 가능한 순열은 무한이라 일컬어도 무방할 정도의 큰 수이기에 바둑계는 컴퓨터에 의해 정복당할 것이라는 걱정으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책 속에서 드러나는 바둑계 종사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이다. 순응하거나, 저항(굴복)하거나. 더이상 바둑의 의미를 찾지 못하여 은퇴한 이세돌 9단을 필두로 AI에 대항(정확히는 절대 이길 수 없기에 대항이 아닌 일종의 타협에 가깝지만) 하는 부류들은 AI로 인해 인간만의 전유물이며, 인간만이 부여 가능했던 바둑의 무형적 가치가 박탈당했다고 토로했다.
인상깊었던 개념은, 형식지(혹은 명시지, 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이다. 흔히들 노하우, 비법이라는 것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는 눈치, 숙련도 등의 다양한 어휘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명시지와 암묵지는 우리의 언어로 쉽사리 표현 가능하냐에 대한 구분일 뿐 ai는 그런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지식에 패턴을 파악한다. 이런 의미에서 ai는 암묵지의 영역에서 인간보다 훨씬 나은 통찰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마치 적외선 영역을 볼 수 있는 야생동물처럼.
다른 가치들의 부족이나 결여, 감소를 지적받고 ‘난 재미있어’라고 논쟁을 끝내려는 사람은 자신이 재미 외의 다른 가치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음을, 자신이 얇팍한 인간임을 폭로할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둑의 문제라면, 역시 고질적 보수성에서 비롯된 고리타분함이 여전히 첫인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같은 식으로, 그것도 훨씬 예전에 컴퓨터에게 최강자의 자리를 내어 준 체스를 보자. 여전히 체스 기사는 인기가 많고, 아무도 ‘체스는 컴퓨터가 제일 잘하는데’ 라며 자기 분야의 몰락의 탓을 ai로 돌리지 않는다. 바둑계가 그러한 변혁을 벤치마킹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종의 엘리트 의식과 바둑은 예술이며 신성하고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신앙적 믿음이 높은 연령대의 향유자에 의한 보수성과 맞물려 이러한 결과를 낳게된 것은 아닐까. MZ한 바둑 유튜버(물론 있지만), MZ한 릴스와 쇼츠를 통한 바둑 마케팅을 통해 도를 갈고 닦아야 겨우 정진가능한 바늘구멍같은 길이 아니라, 젊은 층이 쉽게 접근가능한 길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에 대한 비판론 : 신선하나, 작가는 과학과 공학을 구분하지 못하는게 아닌가 라는 착각마저 든다. 본인이 SF작가라는 설명이 없었다면, 테드 창과 그렉 이건의 하드보일드 SF를 더 읽어보고 책을 작성했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남기고 싶을 정도였다.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허무맹랑하거나, 장황하여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이 등장했다. 굳이 콕 집어 설명하자면 작가가 물음표로 문장부호를 마무리하는 대부분의 문장들.
또 이해 안됐던 것들 ..
“1984” - 조지 오웰 “특이점은 온다” - 레이 커즈와일
둘다 조만간 읽을 책이긴 하다만..
세상의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댔는데, 본인은 스스로 인공지능의 문제를 제대로 정의했나? 본인은 기술의 발전과 발달에 전혀 거부감이나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는데, 책의 말미의 내용을 보면 기술 혐오론자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주장을 펼침.
문과의 시선으로 (소설가의 시선으로) 공학과 과학 전반을 바라보면 생기는 전형적인 기술과 과학의 몰이해에 의한 오류가 종종 보였다. 김 모 교수님처럼 엔트로피를 철학적 의미로 해석한다던지 하는 일은 없었지만, SF 작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족한 전문성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일반론 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바둑에서의 AI의 수용은 굉장히 특이 케이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의 AGI 개발의 프론티어에서 볼 때 바둑 AI였던 알파고는 기념비적인 상징성을 가진 사건일 뿐 현재를 크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둑을 테마로 잡았으면, 바둑으로 마무리를 지었다면 좋았을걸, 바둑에 대한 취재와 조사를 바탕으로 쓴 글과 본인의 생각과 현재의 상황이 첨언된 뒷부분의 내용의 결의 차이가 심히 느껴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