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라고 불리는 소년은 주인공의 마음 속에 있는, 혹은 주인공에게만 보이는 존재로 15살을 맞은 소년의 결정에 관여하고 중요한 대답이나 선택에 조언한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까마귀라고 불리는 소년이 존재하는지도, 혹은 존재하기를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언행과 결정을 대리하고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주인공은 까마귀라고 불리는 소년의 결정을 따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의 인격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루키는 15살 언저리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소년에게는 성인의 마음속에는 잠재적으로만 존재하는 자아를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 표현한 것 같다.

책과 도서관을 자주 소재로 사용하는 그의 장편 특성상 여러 작가들의 책이 소개되곤 한다. 주인공의 이름이 카프카이기에, 먼저는 프란츠 카프카의 “유형지에서”가 소개된다. 처형기계라는 장치에 대한 순수하고 기계적인 설명을 통해 기계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만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을 생생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인공은 말하고 있다. 1Q84에서 덴고가 후카에리에게 읽어준 안톤 체호프의 “사할린 섬”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어떠한 사물과 정경에 대한 지극히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는 때로는 두루뭉술하고 모호한 감정적 묘사보다 인물의 상황에 대해 잘 설명하곤 한다. 후에 나온 나쓰메 소세키의 “갱부” 또한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슈베르트의 D장조 소나타가 좋은 이유를, 오시마 씨는 ‘불완전함’ 때문이라고 한다. 악보대로 매끈하고 완벽하게 연주한 것은 아무 맛도 없는 골동품이 되어버리기에 연주자들은 이율배반 속에서 몸부림을 치며 불완전함을 탈피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무엇을 상상하는지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겠냐는 사쿠라의 질문에, 무엇을 상상하는가는 이 세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반문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하루키의 사회참여적 면모.

그의 사회참여적 면모는 도서관을 찾아온 여성 인권 단체의 사람들과의 대면을 통해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차별의 상처는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타인이 쉽사리 공감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들,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 공허한 부분을 무감각한 지푸라기로 채우고 돌아다니며 그 무감각함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부류에 비판을 열거한다. 작금의 문단에서 젠더 이데올로기와 그 견해로부터 아예 눈을 돌리기는 어렵지만, 디즈니와 같은 쿼터제식의 다양성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이러한 대목을 집어넣은 것은 다소 작위적이지만 눈쌀을 찌뿌릴 정도는 아니다.

해변의 카프카라는 노래의 후렴에 등장하는 두개의 이상한 코드. 자연스러운 재능과 솔직하고 다정한, 그래서 기적적인 어우러짐이. 해변의 카프카의 가사가 본인을 암시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질감을 느끼는 정도를 넘어 본인의 이야기임을 직감하는 카프카와 함께 1권의 이야기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