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 책은, 달리기에 관한 책이 아니라 달리기라는 하루키의 인생에 대한 좋은 메타포를 통해 그가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고 소설가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는지에 관한 수필인 것 같다. 그의 책 중 표현방법이나 아이디어가 튄다고 생각했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그의 소설가로서의 극 초기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가 그를 소설가로서 좋아하게 된 동기인 그의 장편이 이러이러한 인생의 굴곡을 통해 닦여온 결과이구나 하고 알게 해주었다.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이 남는다. 하늘이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넓고 아득한 그릇이 존재하는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수 밖에 없다.”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
학교라는 데는 들어가서 무언가를 배운 후에는 나와야 하는 곳이다.
해가 지면 느긋하게 지내며 더 이상 일은 하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며 편히 쉬면서 되도록 빨리 잠자리에 든다. (중략) 다만 이런 생활을 하고 있으면 나이트 라이프 같은 것은 거의 없어져 버리고, 사람들과의 교류는 틀림없이 나빠진다. 화를 내는 사람도 생긴다. 뭔가를 하자는 권유가 있어도 전부 거절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립하여 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자주 ‘인생은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을 어떤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도 손쉽게 얻는다.
학교란 그런 곳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다’는 진리이다.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런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재능의 문제점은 대부분의 경우, 그 양이나 질을 소유자가 잘 컨트롤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양이 부족하니까 약간 양을 늘려보고 싶다고 생각해도, 절약해서 조금씩 꺼내서 가능한 오래 쓰려고 해도 그렇게 (후략)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그리고 나에게 있어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 ‘러너스 블루’ 라고나 할 만한 것이 (감촉으로 말하면 그것은 블루는 아니고 희고 탁한 색에 가까운 것이지만)
왜냐하면 “러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 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 것 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