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선생님이 졸업식 때 선물해주신 최영미 작가의 시집과 소설을 이제야 들추어 볼 여유가 생겼다. 정제되고 가지런한 글이 아닌 날 것의, 처절한 삶의 현장 가운데 피어난 자기 고백적 문학. 그놈의 ‘AI’ 시대에 산다고 말하는 우리는, 주머니 속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다 편지 쓰는 법을 잊은 현대인처럼, 더 이상 문학의 필요성과 가치를 망각한 것 같다.
시집 속 시들은 괴로울 정도로 선명하게 처절히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부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로 ‘대비 Contrast’를 높혀둔 사진처럼, 쨍하게 가슴이 아려오는 ‘지리멸렬한 고통’이 느껴지는 듯 하다. 시를 읽으면서 종전에 보러 갔던 ‘고흐’ 전이 생각났다. 가난과 외로움, 상처의 감정을 뷰파인더에 맺힌 상처럼 지독하게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굳이 애써 나의 감정을 묘사하고 표현하지 않고도 담담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 공감과 이해를 강요하는 이 시대 속에서 치장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글이 더욱 가슴깊게 박히는 것 같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와 산문만을 배울 수밖에 없었던 나는, 정작 3년동안 선생님이 관심 가지시고 읽으시는 책을 전혀 알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의 글을 받아들일 수 없는 병에 걸렸기에 작가의 과거와 일련의 일어난 일들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의 내용을 통해 굴곡이 있는 삶을 살아왔겠거니 미루어 짐작하긴 하였지만, 작가의 히스토리를 보고 다시 시를 되새겼을 때 다가오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눈은 손이 될 수 없고
사랑은 미움으로 변할 수 없었고
나뭇가지를 깎아 만든 펜으로
진흙 위에 일용할 양식을
소중한 것들을 기록했다
한번 새긴 글은 지우지 않았고
진흙판을 깨지 않고는 한 글자도 지울 수 없었다(중략)
누구를 가슴속에서 완전히 지우고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기술을 아는 우리는지우개를 발명하고
사랑과 증오를 오려붙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은 차단하고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심심해서, 라고 말하는 인류는
글이라는 작고 투박한 그릇에 감정의 생기를 불어넣는 행위는, 감히(가히) 단정하고 일목요연한 자기 소개서, 결과 보고서 따위를 써내려가는 AI의 글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 시집이 마음에 와닿고 잘 읽혔던 것은, 이해 되지 않는 어휘와 표현과 은유로 자신을 치장하지 아니하고 순박하고 투박한, 하지만 위선없고 생생한 문체로 표현된 시에서 시인의 고상함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괴물’ 또한 실려 있었다. 미투 운동의 시작이 되었던 사건이라고, 검색되었다. 과연 나는 거대한 물살 같은 사회적 부조리와 시류 가운데서 올곧게 저항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10/26 추가
이 시집의 영어 제목은, the party was over이다. 파티가 끝나고 아무도 없는 어질러진 자리를 정리하는 분위기가 가끔 생각난다. 집에 손님이 오시면 웃고 떠들다가도 손님이 가고나면 맞게 되는 공허한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