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누가 보아도 라플라스의 악마에서 착안한 라플라스의 마녀라는 제목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이 책이 원래 유명한 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음에도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은 잘 지은 제목이라는 뜻이 아닐까

플롯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라플라스의 악마와 같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더 정확히는 ‘마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 주인공은 여자이다(물론 같은 능력을 가진 남자도 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소녀. 무슨 양산형 웹소설에서 나옴직한 싸구려스러운 아이디어를, 히가시노 게이고는 세련된 전개와 접근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시킨다. 장면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바뀌며 역동성을 주는 연출은 이제는 나름 흔하지만, 작가는 처음부터 방대한 세계관과 여러 등장인물을 쉴틈없이 소개하여 독자에게 혼란과 피로를 부과하지 않았다. 다만 씨앗이 움트고 그 안에서 싹이 자라나 가지를 치는 것 처럼 작은 사건과 이야기로부터 점점 다양한 등장인물이 얽히고 문제가 자라나는 것을 그저 독자들에게 숨죽여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들 간의 연관성과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기대를 자연스레 가지도록 하였다.

느낌

책이 두꺼운 것에 비해 쉽게 읽히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한 눈에 들어오는 친숙한 이름이 아님에도 누가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추리소설을 많이 읽으면서도 이 장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작가가 감도 오지 않는 여러 단서들과 힌트들을 작가 나름대로 책 곳곳에 심어두고, 독자는 생각도 못할만한 신박하고 기발한 정답을 줄줄히 나열해서 유추하고 맞춰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으라고 제시해두고 그럴싸한 답을 제시하며 자신의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힌트를 통해 알아맞춰보라는 식으로 제시하지 않고, 그저 보여준다. 상황들이 제시되었을 때 내가 추리한다, 유추한다는 자각을 하기도 전에 사건들의 퍼즐을 끼워맞추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쉽고’ 대중적이면서도 이러한 장르의 본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잘 만들어진 책이다.

개연성이라고 한다면, 이미 ‘라플라스의 악마’가 존재한다고 전제된 시점에서 따질 필요가 없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억지를 부리거나 부자연스러운 개입이 있지도 않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결국 고전역학의 난제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해결하는 것으로 그들의 시선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 추가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감성이 있다. 특유의 스타일 때문에 좋다고 하는 사람도, 질려서 더는 안보겠다는 사람도 있다. 지금 이 글을 덧붙이고 있는 6월 27일,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고 있는 중인데 다른 사람들이 왜 그런 평가를 내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근데 나는 시간 죽이기 좋은 책이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지는 않지만 읽음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

링크


어릴 적부터 추리 소설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은 아마도 할머니와 함께했던 독서의 추억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싶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항상 읽었던 책은 아르센 뤼팽 시리즈였고, 그 이후에는 셜록 홈즈를 탐독했다. 게이고의 소설이 이러한 ‘정통의 추리 소설’ 장르와는 약간의 괴리가 있지만, 추리소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손이 가게 되었다. 어쩌면 분명 예전의 독서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라플라스의 마녀’ 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바로 멈칫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공대생일 가능성이 크다. ‘라플라스의 마녀’ 라는 이름은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하는 과학 철학적 모티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사족을 곁들이자면, 라플라스의 악마는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알고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진 가공의 악마로, 뉴턴의 결정론적 사고관 속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결정론적 사고관의 최종 산물이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이 개념은 부정된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라플라스의 마녀’를 접할 때 왜 주인공이 ‘라플라스의 마녀’ 라고 불릴 수 있는지, 겹쳐진 우연에 의한 비극이라 간단히 치부될 만한 사건을 왜 작품 속 인물들이 주목했는지 명료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대생 출신인 작가의 탄탄한 과학적 배경지식이 녹아들어 허구적 개념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픽션이기에 범해질 수 밖에 없는 과학적 오류 또한 나름의 개연성을 가지고 독자가 받아들이게끔 한다. 대중문화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소재를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그럴듯한 개연성과 정교한 플롯으로 녹여내어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임에도 지루한 틈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의 도입부는 조금 루즈하게 느껴졌다. 관련 없어 보이는 여러 개의 이야기들이 각자의 타임라인에서 독립적으로 전개되어 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행됨에 따라 점점 하나의 커다란 흐름으로 연결되어가는 과정을 좇다 보면, 어느새 나 스스로가 어떠한 연관성이나 의미를 추론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전혀 맞을 것 같지 않던 두 조각들에 점점 살이 붙으면서 거대한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일종의 지적 유희로 느껴졌고, 그것이 이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소였다. 작가의 작위적 스토리텔링과 전개를 따라가면 독자의 역할은 수동적인 관찰자로 제한되지만, 작가의 필력에 기반한 자연스러운 연결 과정을 통해 독자는 사건에 능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게 된다.


두꺼운 책의 두께에 비해 빠른 속도로 몰입하여 쉽게 읽을 수 있었으며, 장르 특성상 등장하는 많은 수의 등장인물들이 혼란을 주거나 이야기를 난잡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동안 읽어왔던 추리소설들의 공통적 특징 중 하나는 때로는 부조리하다고 느낄 정도의 억지스러운 전개이다. 독자가 절대 알아챌 수 없는 복선과 단서를 숨겨놓고, 지금껏 뿌린 모든 복선을 인위적으로 끼워맞춘 결말을 제시하는 식이다. 자신의 상상력과 지적 우월감을 드러내는 듯한 작가의 태도가 마치 독자를 우롱하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추리 소설 장르의 고질적 문제를 느낄 수 없었다. 장편 소설이기에 전개 과정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납득할 만한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충분한 상황 설명과 배경 묘사, 자연스러운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서로 다른 사건과 단서를 연관짓게끔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소설을 다수 읽으면서 느끼게 된 그의 강점은, 그가 읽는 독자를 고려하여 소설을 쓴다는 점이다. 본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전개하는 이야기이기 보다 독자의 입장에서 궁금한 점이 무엇이고, 무엇을 상상하고 있을지를 숙고하여 섬세한 이야기가 되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개연성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할 말이 없다. 그의 단편에서 드러나듯이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이라는 작가의 N적인 상상력에 작가 특유의 공대생 식 개연성을 잘 곁들인 점이 돋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부터 미래까지의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는 초인적 능력을 가졌음에도 인물들의 시선이 결국 고전역학의 난제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해결하는 것에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에 의해 부정당한 라플라스의 악마 모티프니까 고전역학 최대의 난제를 푸는 것으로 방향성을 틀지 않았을까?’ 라는 개인적인 추측도 해본다. 공대생식 위트를 작가의 필력으로 잘 풀어냈다는 생각을 품었다.

작품의 주제의식이나 시사하는 바에 대해서는 남기고 싶은 말도 없을 뿐더러, 그런 것들을 찾으면서 읽지는 않았다. 굳이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초인적 능력이 주어진 인간 또한 극히 인간적인 번뇌 앞에서는 한낱 연약한 인간으로 전락한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겠다. 애초에 인간의 비열한 본성, 전쟁과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운명론적 세계관 따위의 주제의식을 설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소설이 아니기에 추리소설 특유의 즐거움을 발견하였다면 그것으로 이 책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